지브리 캐릭터 <하울의 움직이는 성> 마르클의 마법 일기 — 성장하지 못한 세대의 책임에 대하여

〈하울의 움직이는 성〉속 마르클은 ‘유예된 어른’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 글은 그의 시선을 통해 책임, 불안, 성숙의 문제를 탐구하며

오늘날 MZ세대가 겪는 성장의 모순과 회복의 가능성을 그린다.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되는 걸까.
법적으로는 스무 살, 사회적으로는 첫 직장, 감정적으로는 상실을 겪을 때.
하지만 그 어떤 기준도 완전한 답이 되지 않는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마르클(Markl)은 이 질문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그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살지만, 이미 어른의 일을 한다.
그는 하울의 제자이자 조수이며, 성의 운영을 책임지는 ‘작은 관리자’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아직 성장하지 못한, 혹은 성장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

 

이 글은 마르클을 통해 ‘유예된 어른’,

즉 성인의 책임을 짊어졌지만 진정한 자아를 완성하지 못한 세대를 탐구한다.
오늘날의 MZ세대가 바로 그 ‘유예된 어른’의 초상이다.
겉으로는 성인으로 기능하지만, 내면은 여전히 성장의 과정 속에 머물러 있다.
지브리는 마르클을 통해 그 세대의 불안, 책임, 그리고 정체성의 모순을 은유한다.

 

1. 마르클의 마법 일기 — 어른이 되기엔 너무 이른 소년

마르클은 하울의 성에서 언제나 바쁘다.
문 앞의 주문을 관리하고, 손님을 맞이하며, 약을 조제한다.
그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똑똑하지만, 여전히 어린아이의 모습이다.
이 모순이 바로 마르클이라는 캐릭터의 핵심이다.

 

그는 어른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어른의 자아를 갖지 못했다.
그의 세계에는 ‘성장할 틈’이 없다.
하울은 자유를 찾아 도망치고, 소피는 자신을 치유하느라 바쁘다.
그 사이에서 마르클은 조용히 ‘중간 세대’로 남아 있다.

 

그 모습은 오늘날의 MZ세대와 닮아 있다.
조기 취업, 빠른 사회 진입, 끊임없는 자기계발 속에서
그들은 아직 감정적으로 성숙할 시간도 없이 어른의 역할을 맡는다.
‘마르클의 마법 일기’는 바로 그런 세대의 내면 기록이다.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의 일기장.

2. 마르클의 마법 일기 — 유예된 어른의 불안

‘유예된 어른’이라는 말은 모순처럼 들리지만,
현대의 청년 세대를 설명하는 데 이보다 정확한 단어는 없다.
그들은 경제적 책임을 지지만, 여전히 불안정하다.
사회적으로는 독립했지만, 정서적으로는 미완성이다.

마르클의 불안은 하울의 부재 속에서 더 명확해진다.

 

그는 스승이 사라져도 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시달린다.
그 책임은 그에게 성숙을 강요하지만,
동시에 그를 ‘아이의 상태’에 가둔다.

 

이 모순은 현실의 청년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

회사에서는 성숙을 요구하지만, 사회는 실패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를 ‘어른이라기엔 부족하고, 아이로 남기엔 너무 늦은’ 존재로 인식한다.
지브리는 마르클의 모습을 통해 성숙의 압박 속에서 자라나는 불안한 자아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3. 마르클의 마법 일기 — 책임이라는 이름의 족쇄

마르클은 자신의 의지로 책임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하울을 돕기 위해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책임은 그를 옭아매는 족쇄가 된다.

 

그는 성을 유지하기 위해 쉼 없이 일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는 모른다.

이 부분이 ‘유예된 어른’의 현실과 깊이 맞닿아 있다.
많은 MZ세대가 책임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 믿지만,
사실은 사회 구조가 그 선택을 강요한다.

 

그들은 성취를 포기하면 뒤처지고,

노력하지 않으면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살아간다.

마르클이 잠들지 못하고 마법서에 파묻히는 장면은

현대 청년의 야근, 자기계발, 불안한 경쟁심과 같다.
그는 더 나은 자신이 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점점 자신을 잃어간다.
지브리는 조용히 묻는다.

“당신이 지고 있는 책임은, 정말 당신의 선택인가?”

4. 마르클의 마법 일기 — 스승 없는 세대의 방황

하울은 천재지만, 동시에 무책임한 어른이다.
그는 자유를 추구하지만, 제자의 성장을 돌보지 않는다.
마르클은 그 공백을 채우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방향을 잃는다.

 

이 관계는 오늘날의 ‘멘토 부재 세대’를 상징한다.
MZ세대는 이전 세대의 기준을 따르기도, 새로운 기준을 만들기도 어려운 세대다.
그들은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하지만, 그 길에는 이정표가 없다.

 

하울의 성 안에서 마르클은 늘 대기 상태로 존재한다.
하울이 돌아올 때까지,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그는 자신을 ‘보류된 존재’로 둔다.

 

그의 일상은 곧 유예된 성장의 은유다.
그는 잠시도 쉬지 않지만,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다.

5. 마르클의 마법 일기 — 유예된 어른의 회복은 가능한가

지브리는 마르클을 성장의 과정에서 멈춘 인물로 그리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배우고, 실수하고, 관계를 통해 조금씩 자라난다.
그의 회복은 화려하지 않지만, 조용한 변화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 변화의 핵심은 소피다.
소피는 그에게 처음으로 “쉬어도 된다”는 메시지를 준다.
그녀는 일과 책임의 완벽함보다, 불완전한 인간다움을 가르친다.
마르클은 소피를 통해 성장의 정의를 새롭게 배운다.

 

성장은 성취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 메시지는 오늘날의 MZ세대에게 중요한 통찰을 준다.
유예된 어른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노력이나 완벽함이 아니라,
자신의 속도를 인정하는 용기다.

 

지브리는 마르클의 시선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성장은 늦어도 괜찮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것이다.”

6. 마르클의 마법 일기 — 책임의 재정의, 그리고 새로운 어른의 탄생

이야기의 끝에서 마르클은 여전히 어린아이지만,
그의 시선은 처음보다 단단해져 있다.
그는 여전히 성을 지키지만, 이제는 두려움보다 자신감이 있다.
그는 어른이 되었다기보다, ‘어른으로 자라는 과정을 받아들인’ 것이다.

‘유예된 어른’에게 필요한 것은 완성된 자아가 아니라,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태도다.

 

지브리는 마르클의 성장을 통해 ‘책임’의 개념을 다시 쓴다.
책임은 짐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배우는 감정의 언어다.

 

오늘날의 MZ세대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사회가 기대하는 완벽한 어른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서로의 불안을 인정하고, 느린 성장의 의미를 나눌 때,
그들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어른이 되어간다.

 

마르클의 마법 일기는 끝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며, 여전히 미완성이다.
그러나 바로 그 미완성 속에서, 지브리는 새로운 인간의 가능성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