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리 캐릭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본 ‘정체성의 성장’ — 불확실한 세대의 자아 탐구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이름을 잃은 소녀의 여정을 통해
불확실한 시대 속 ‘정체성의 성장’을 탐구하는 지브리의 대표작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나라는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질문 앞에 멈춘다.
특히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그런 혼란의 시기에
자아를 찾아가는 한 소녀의 여정을 통해 정체성의 성장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이 영화는 단순한 판타지 모험이 아니다.
그것은 이름을 잃어버리고, 다시 되찾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닫는 인간의 내면적 여정을 은유한다.
2025년의 사회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직업의 형태도, 인간관계의 방식도, 가치관의 기준도 빠르게 변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치히로처럼 낯선 세계에 던져지고,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을 찾아야 한다.

 

이 글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통해
‘불확실한 시대의 정체성’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성장하는지를 탐구한다.

 

1. 낯선 세계로의 초대 — 정체성의 위기

이야기의 시작에서 치히로는 부모와 함께 새로운 동네로 이사 가던 중
우연히 신들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곳은 인간의 규칙이 통하지 않는, 완전히 다른 질서의 공간이다.
부모가 돼지로 변하는 장면은 단순한 마법이 아니라,
‘기존 세계의 가치관이 무너지는 순간’을 상징한다.
안정된 세계가 무너질 때, 인간은 두려움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잃는다.
치히로에게 세상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그녀는 이름을 빼앗기고, ‘센’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는다.

이 장면은 현대 사회의 한 단면과 닮아 있다.
많은 사람들은 조직, 관계, 사회적 역할 속에서 자신을 잃는다.
자신의 이름은 존재의 상징이지만,
치히로는 그것을 잃음으로써 비로소 진짜 ‘나’를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이것이 지브리 작품이 보여주는 첫 번째 성장의 통과의례다.

2. 이름을 잃은 존재 — 자아의 공백과 재구성

치히로는 유바바의 목욕탕에서 ‘센’으로 불린다.
그녀는 더 이상 과거의 자신이 아니다.
이름을 잃은 존재는 곧 자기 기억과 정체성을 잃은 존재다.
하지만 이 상실은 동시에 자아의 재구성을 위한 여백이 된다.
치히로는 새로운 환경에서 낯선 규칙을 배우고,
스스로의 행동을 통해 다시 자신을 만들어간다.

이 과정은 마치 현대 청년들이 사회에 진입하며 겪는 ‘정체성의 공백기’와 같다.
취업, 인간관계, 경제적 불안은 기존의 자아를 무너뜨리지만,
그 속에서 사람은 새로운 나를 만들어간다.
치히로가 유바바의 명령에 복종하면서도,
결국 자신의 방식으로 일을 해결하는 모습은
순응과 저항,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인간의 성장을 상징한다.
정체성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실패와 시도의 반복 속에서 서서히 완성된다.

3. 하쿠와의 관계 — 자기 이해의 거울

하쿠는 치히로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기억을 잃은 존재이자, 동시에 치히로가 자신의 이름을 되찾게 도와주는 존재다.
하쿠는 과거에 자신이 ‘코하쿠강의 신’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치히로가 그의 이름을 기억해내는 순간,
그는 비로소 자유를 얻는다.
이 장면은 단순한 우정이나 사랑의 감정보다 더 깊은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타인을 이해함으로써 자신을 발견하는 경험이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인식한다.
하쿠와 치히로의 관계는 소유가 아니라 ‘존재의 기억’에 기반한다.
그들은 서로를 구원하면서, 자신의 본질을 깨닫는다.
이것은 현대 사회의 ‘관계 피로’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진실이다.
타인을 진심으로 이해할 때, 우리는 거울처럼 자기 자신을 다시 보게 된다.
하쿠와 치히로의 만남은 그 거울의 서사적 구현이다.

 4. 노동과 성장 — 책임의 윤리

유바바의 목욕탕은 신들의 욕망이 모인 장소이자,
치히로가 성숙해지는 공간이다.
그녀는 처음엔 두렵고 서툴렀지만, 일을 통해 점차 자신을 단련한다.
‘노동’은 이 작품에서 중요한 주제다.
지브리 세계에서 일은 단순한 생계가 아니라, 존재의 증명이다.
치히로는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두려움을 통제하고, 책임을 배우며, 타인을 돕는 법을 익힌다.

현대 사회에서도 많은 젊은 세대가 ‘노동’과 ‘자기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한다.
하지만 진짜 성장은 완벽한 직업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일 속에서 자기 의미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치히로의 노동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자기 확립의 의식이다.
그녀는 타인의 명령에 복종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계와 소통하며 주체로 성장한다.

 5. 이름을 되찾는 순간 — 불확실한 시대의 자아

치히로가 마지막에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내는 순간,
그녀는 신들의 세계를 빠져나올 자격을 얻는다.
이 장면은 단순한 해피엔딩이 아니라,
‘정체성을 회복한 자만이 세계와 관계 맺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현대의 불확실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잃는다.
직업의 변화, 관계의 단절, 타인의 시선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흔들린다.

그러나 치히로의 이야기는 말한다.
정체성은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잃었다가 다시 찾아가는 과정 자체라고.
그녀는 더 이상 과거의 치히로가 아니다.
그녀는 경험을 통해 성장했고, 자신만의 시선을 얻었다.
이것이 불확실한 세대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성장 서사다.

6. 치히로 세대 — 불완전함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사람들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치히로처럼 불확실한 세계에서 성장하고 있다.
그들은 미래를 확신할 수 없지만, 멈추지 않는다.
비정규직과 프리랜서, 빠르게 변하는 관계와 불안정한 경제 속에서
그들은 자신만의 이름을 지켜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치히로가 목욕탕에서 하루하루를 버텼듯,
이 세대 또한 각자의 작은 일상에서 존재의 증거를 쌓아간다.

그들은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 이 자리에서 진짜 나로 살아가기’를 택한다.
SNS 속 타인의 성공에 흔들리지 않고,
작은 성취와 경험을 통해 스스로의 의미를 만든다.
그 모습은 어쩌면 치히로가 신들의 세계를 떠나는 마지막 장면과 닮아 있다.
그녀는 영웅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녀는 단지 자신을 알고, 다시 걸음을 내딛는다.

이 세대에게 정체성은 ‘완성된 목표’가 아니라,
매일 조금씩 갱신되는 생의 과정이다.
치히로의 서사는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보이지 않는 불안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인간의 끈질긴 의지.
그 용기가 지금 이 시대의 진짜 성장이다.

7. 결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결국 ‘이름’이라는 상징을 통해
정체성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변화하며, 회복되는지를 보여준다.
치히로는 신들의 세계를 떠나면서도, 그곳의 기억을 잊지 않는다.
그녀의 눈빛에는 두려움 대신 확신이 있다.
이 작품은 불확실한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너는 너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니?”

정체성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계속되는 과정이다.
치히로처럼 사람은 매일 자신의 이름을 다시 부르고,
그 이름에 의미를 더해가며 성장한다.
지브리가 그려낸 판타지는 결국 현실의 거울이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혼란과 불안 속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가장 용기 있는 성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