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리 캐릭터 '유바바'의 계약서 — 통제 사회가 개인을 소모하는 방식

유바바의 계약서는 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가

영화 속 유바바는 단순한 악당이 아니다.
그녀가 사용하는 계약서, 이름을 빼앗는 방식, 노동을 담보 조건으로 걸어버리는 시스템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보이지 않는 통제’의 본질을 압축해 보여준다.

 

청년 세대는 심리적·경제적 압박 속에서 본인의 욕망보다 “살아남는 법”을 먼저 배운다.
직장에서는 평가 지표와 실적이 인간의 가치를 재단하고, 사회는 끝없는 경쟁을 요구하며,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 결정해주는 구조는 점점 견고해진다.

 

유바바의 계약서는 이 모든 시스템을 상징하는 비유다.
그녀는 사람의 이름을 빼앗고, 노동을 교환 조건으로 설정하고, 도망칠 수 없도록 규칙을 던져 넣는다.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보이지 않는 규정과 관성으로 개인을 묶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유바바'의 계약서 — 통제 사회가 개인을 소모하는 방식

이 글은 ‘유바바의 계약서’를 중심으로 통제 사회가 개인을 어떻게 소모하고,
그 과정에서 무엇이 지워지며, 그 소모를 끊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탐구한다.

---

1. 유바바의 계약서 — ‘이름’을 빼앗는 통제의 첫 단계

유바바의 계약서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개인의 이름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이름은 정체성의 핵이자, 개인이 자신을 호출하는 가장 기본적인 언어다.

 

이름을 잃는다는 것은 “너는 더 이상 너 자신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다.

통제 사회의 첫 번째 단계는 우리를 ‘동일한 단위’로 만드는 것이다.
학교의 번호, 직원 번호, 성과 점수, 생산성 지표 등 이름 대신 다른 숫자나 규격이 우선되는 순간
개인은 ‘개별성’ 대신 ‘교체 가능한 자원’으로 취급된다.

 

유바바의 계약서 속 이름 상실은 다음과 같은 현실적 경험을 은유한다.

• 반복되는 업무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희미해질 때
• 직장에서 ‘자기다움’보다 ‘회사다움’을 우선 요구받을 때
• 시스템에 순응하는 것을 생존 전략으로 배울 때
• ‘내가 원하는 삶’보다 ‘필요해서 하는 삶’이 커질 때

이름을 잃는다는 것은 정체성과 욕망이 사회적 틀에 갇히는 과정을 의미한다.

유바바의 계약서는 말한다.
“시스템이 원하는 것은 당신이라는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 원하는 역할이다.”

---

2. 통제 사회의 구조 — 규칙을 무기로 개인을 길들이는 방식

유바바의 세계는 규칙으로 가득 차 있다.
모든 일은 규정되고, 예외는 존재하지 않으며, 계약서를 통해 통제가 구조적으로 고착화된다.
이는 실제 사회의 통제 방식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현대의 통제는 더 이상 강압적 명령 형태로 오지 않는다.
대신 ‘규칙’과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부드럽게 다가온다.

예를 들어, “모두가 이렇게 하니까 너도 해야 한다.”,

“안전한 선택을 해라.”, “이 기준에 맞추지 않으면 뒤처진다.” 이런 논리는 강요처럼 보이지 않지만
결국 사람의 행동을 패턴화하고, 감시하고,스스로 알아서 순응하도록 만든다.

 

통제의 가장 무서운 점은 통제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유바바의 세계에 들어가면 규칙이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에 누구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통제 사회의 전략이다.

통제는 강제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작동할 때 가장 강력하다.

---

3. 노동의 착취 — 보상보다 ‘의존’을 설계하는 시스템

유바바는 노동을 착취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일할 곳을 마련해준다”고 말한다.
이 구조는 매우 현대적이다.

통제 사회는 언제나 “네가 필요해서 이 시스템에 들어온 것”이라는 착각을 유도한다.
그 결과 개인은 시스템에 의존하게 되고, 의존하는 순간 스스로 벗어나는 것이 어려워진다.

 

오늘날의 노동 구조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1. 노동의 가치가 개인의 가치로 연결되는 착각
   더 바쁘다는 이유로 더 가치 있다고 느끼게 만들며, 결국 ‘쉼’을 죄책감으로 바꾼다.
2. 대체 가능성의 압박
   시스템은 항상 “너 말고도 할 사람 많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는 개인을 침묵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낮추게 한다.
3. 보상보다 불안을 동력으로 사용하는 구조
   불안이 사라지면 통제가 약해지기 때문에 일정한 불안을 시스템 안에 계속 유지한다.

유바바의 계약서가 설계한 노동은 보상이 아니라 종속을 만든다.
그리고 종속은 곧 소모로 이어진다.

---

4. 개인의 소모 과정 — 감정, 욕망, 주체성의 순차적 붕괴

통제 사회가 개인을 소모하는 방식은 직선적이지 않다.
차근차근, 그러나 정확하게 개인의 내부 구조를 무너뜨린다.

 

① 감정의 소모

반복되는 요구, 규칙, 감정 통제는 사람을 점점 무감각하게 만든다.
감정을 잃어버린 개인은 시스템이 원하는 속도로 일하는 존재로 변한다.

 

② 욕망의 소모

소모가 쌓이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희미해진다.
욕망을 잃은 사람은 외부 요구에 가장 민감한 상태가 된다.

 

③ 주체성의 소모

마지막에는 “나는 무엇을 해도 구조를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이 자리 잡는다.
이 무력감이 개인을 가장 효율적으로 지배하는 도구다.

유바바의 계약서가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억압적이어서가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를 시스템에 맞추려 들도록 만든다는 데 있다.

 

오늘날 많은 청년들이 느끼는 번아웃, 무기력, 방향 상실은 이 소모 구조가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결과다.

---

5. 계약을 파기하는 힘 — 통제 사회를 벗어나는 ‘새로운 저항 방식’

유바바의 계약서를 파기하는 방식은 폭력이 아니다. 전복도 아니다.
더 강한 권력으로 덮어쓰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내 이름을 기억하는 것”, 다시 말해 정체성의 회복이다.

통제 사회를 탈출하는 실제적 방식도 이와 같다.

 

① 스스로의 감정을 다시 느끼는 힘

억눌렸던 감정, 피로, 분노, 슬픔을 다시 감지하면 시스템의 속도가 자신에게 맞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② 욕망을 다시 호출하기

내가 하고 싶은 것, 나를 흥미롭게 하는 것, 내가 원래 꿈꿨던 것들을 떠올리는 과정은 통제의 균열을 만든다.

 

③ ‘거절’이라는 미세한 자기 선택

작은 거절, 작은 멈춤, 작은 단호함은 개인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데 가장 강력한 시작점이다.

 

④ 건강한 관계 맺기

통제 구조는 “너는 혼자다”라는 착각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관계가 회복되는 순간 통제는 힘을 잃는다.
함께 가는 사람은 쉽게 지배되지 않는다.

유바바의 계약서가 깨지는 것은 결국 관계·기억·정체성의 결합이 완성될 때다.

---

6. 유바바의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법 — 자기 삶의 규칙을 만드는 사람들

통제 사회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규칙, 시스템, 책임, 조직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할 것이다.
문제는 그것들이 개인을 소모하느냐, 아니면 개인을 지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유바바의 세계를 벗어난다는 것은 시스템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규칙을 내가 다시 작성한다는 의미다.

여기에는 네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1. 속도 조절
   시스템의 속도가 아니라 자신의 리듬을 기준으로 삶을 설계하기.
2. 관계의 선택
   소모시키는 관계는 멀리하고, 회복시키는 관계는 가까이하기.
3. 작은 주체성 회복
   하루에 단 한 가지라도 ‘내가 선택한 것’을 만들기.
4. 지워진 이름 되찾기
   ‘나는 무엇을 원했는가’라는 질문을 매일 아주 조금씩 복원하기.

유바바의 계약서가 말하는 통제 사회는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름을 되찾는 사람은 그 안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다.

---

결론 —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계약서를 다시 써야 한다

유바바의 계약서는 타인의 규칙이 우리의 삶을 대신 결정하는 순간을 상징한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십 번, 수백 번 작은 계약들을 맺는다.
직장, 관계, 가족, 사회, 의무, 책임…
그 안에서 우리는 흔들리고, 소모되고, 잊힌다.

 

그러나 통제의 구조는 ‘자가 정체성 회복’ 앞에서 힘을 잃는다.
유바바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힘은 거대한 용기가 아니라 작은 회복의 축적에서 시작된다.

 

우리의 이름을 되찾는 일, 우리의 욕망을 기억하는 일, 우리의 삶을 다시 선택하는 일,
이 모든 것이 통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갖춰야 할 가장 근본적 생존 기술이다.

결국, 계약서를 쓰는 사람은 유바바가 아니라 ‘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