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바람이 분다〉의 지로 호리코시는 꿈을 좇은 창조자이지만,
그 꿈은 전쟁이라는 시대의 그림자 속에서 무거운 책임과 윤리적 딜레마를 안긴다.
이 글은 지로의 꿈과 책임, 그리고 창조자가 짊어진 윤리의 무게를 현대적 시선에서 깊이 있게 분석한다
지브리 캐릭터 '지로 호리코시'의 꿈과 책임 — 창조자가 짊어진 윤리의 무게
〈바람이 분다〉 속 지로 호리코시는 단순히 비행기를 만든 기술자가 아니다.
그는 시대의 욕망을 품고, 동시에 그 욕망이 만들어낼 비극을 예감한 채 자신의 꿈을 짓던 창조자다.
그의 삶에는 열망과 아름다움이 있었고, 그 열망 아래에는 전쟁이라는 무거운 그림자가 깔려 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지로의 손끝에서 탄생한 항공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아름다움이 결국 어디로 향할지에 대한 역사적 질문을 놓지 않는다.
이 글은 지로의 꿈과 책임을 따라가며, 창조자가 감당해야 했던 윤리적 무게를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읽고자 한다.

1. 지로의 꿈 — 창조자가 품은 이상과 현실의 첫 번째 균열
지로의 꿈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그는 하늘 위를 나르는 기계를 보며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단순하지만 순도 높은 욕망을 품는다.
그 꿈은 기술적 도전이자 예술적 열망이다.
지로는 자신이 만든 비행기가 바람을 가르며 떠오르는 순간을 상상하며, 세상을 향한 설계자의 꿈을 키운다.
그러나 지로의 꿈에는 이미 균열이 잠재되어 있었다.
그가 만드는 항공기는 순수한 예술품이 아니라 군국주의 국가가 필요로 하는 도구였다.
지로는 비행기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지만, 나라가 원하는 것은 전쟁을 수행할 빠른 전투기였다.
즉, 창조자의 꿈은 태생적으로 현실의 요구와 충돌한다.
미야자키는 이 균열을 지로의 표정과 침묵을 통해 섬세하게 드러낸다.
지로는 꿈을 버리지 않지만, 그 꿈이 향하는 방향이 자신을 불안하게 한다는 사실을 어른이 된 뒤에야 깨닫는다.
이 장면은 오늘날 창작자에게도 동일하게 다가온다.
창조의 열망은 언제나 순수하지만, 그 결과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때 창조자는 꿈의 아름다움과 현실의 무게 사이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다.
2. 책임의 무게 — 지로가 선택한 설계자의 길
지로에게 책임은 선택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그는 “나에게 주어진 재능은 쓰여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고,
그 믿음은 그를 설계자의 길로 밀어 넣었다.
지로는 천재적 능력을 가진 창조자였고, 그 능력을 국가가 먼저 알아본다.
그러나 책임의 무게는 단순히 ‘국가에 기여해야 한다’는 당위로 설명되지 않는다.
지로는 전쟁을 원한 적 없고, 전투기를 만들어 적을 죽이고 싶지도 않다.
그럼에도 그는 말한다.
“나는 그저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고 싶은 사람일 뿐이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책임의 진짜 무게를 드러낸다.
창조자는 자신의 창작물이 어떻게 사용될지까지 결정하지 못한다.
지로는 예술적 아름다움과 기술적 정교함을 쫓았지만, 그 결과는 전쟁의 도구가 된다.
이 모순은 창조자에게서 책임의 무게를 빼앗아가면서 동시에 떠안긴다.
오늘날 기술자와 창작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인다.
AI 기술, 과학 연구, 디자인, 콘텐츠까지 창조물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사용되는 순간,
책임의 방향은 언제나 창조자의 등 뒤로 돌아온다.
지로의 책임은 그런 시대적 딜레마를 정면에서 마주한 사례다.
3. 창조자의 딜레마 — 꿈과 현실 사이에서 지로가 직면한 윤리
지로의 삶에는 창조자로서 피할 수 없는 딜레마가 있었다.
그의 마음은 비행기라는 창조물의 아름다움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 창조물이 향하는 목적은 전쟁이었다.
그는 이상을 좇았지만, 현실은 그의 창조물을 폭력의 틀에 가두었다.
지로는 자신의 설계가 전쟁에 동원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로는 창조를 멈추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로는 창조자가 느끼는 ‘만드는 기쁨’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이 가진 본능적인 창조 욕망의 가장 솔직한 모습이다.
윤리적 갈등은 창조자의 마음속에서 깊게 뿌리내린다.
지로는 스스로의 창작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만들지 않는 것’이 도리어 자신을 더 큰 비극으로 몰고 간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미야자키는 이 딜레마를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 ‘존재론적 고민’으로 제시한다.
지로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선택할 수 없는 세계에 살았다.
그가 감당해야 했던 윤리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선택과 그 선택의 무게’였다.
4. 지로의 윤리 — 선택하지 못한 시대의 창조자가 짊어진 무게
지로는 스스로를 전쟁의 도구를 만드는 사람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기술자로, 창조자로, 설계자로 이해한다.
그러나 시대는 그에게 다른 역할을 부여했다.
그는 선택하지 않았지만, 시대가 강요한 역할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 지점에서 지로의 윤리는 ‘의도’가 아니라 ‘결과’로 판단된다.
그가 만든 제로센 비행기는 전쟁을 상징하는 대표적 군사 기술이 되어버린다.
그의 이름은 기술자였지만, 그의 창조물은 죽음의 도구였다.
지로가 짊어진 윤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창조자가 자신의 의도를 지킬 수 없는 시대에 살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시대가 그의 꿈을 뒤틀어 사용했다는 사실.
지로는 자신이 한 일을 변명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는 묵묵히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의 비행기를 떠올린다.
그 비행기는 전쟁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로의 삶 그 자체이기도 했다.
미야자키는 이 복합적인 윤리를 비난 없이 보여준다.
그는 지로가 옳았는지, 틀렸는지 말하지 않는다.
대신 창조자가 시대에 의해 어떻게 소비되고 왜곡되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이 바로 ‘윤리의 무게’다.
5. 책임을 마주한 꿈 — 나호코와 지로가 보여준 삶의 비극
지로의 꿈은 개인의 이상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 전쟁과 죽음, 병이라는 현실에 부딪힌다.
그 과정에서 나호코의 존재는 지로의 꿈에 또 다른 층위를 더한다.
나호코는 지로에게 사랑이자 휴식이며, 동시에 잃어버린 시간의 상징이다.
지로는 전쟁의 시대에 사랑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의 꿈과 노동은 결국 나호코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지 못한다.
나호코는 병으로 인해 조용히 사라지고, 지로는 꿈만 남겨 놓은 채 홀로 남는다.
이 장면은 창조자가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잃는지 보여주는 순간이다.
지로는 비행기를 완성했지만, 사랑을 지키지 못했다.
즉, 그의 꿈은 결국 책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삶의 중요한 부분을 앗아간다.
미야자키는 “그럼에도 바람은 분다”라고 말한다.
지로의 꿈은 계속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치른 대가는 너무 컸다.
이 비극은 창조자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인 메시지다.
6. 창조자의 무게 — 지로가 남긴 질문과 오늘의 우리의 답
영화의 마지막에서 지로는 자신의 비행기가 하늘을 가르는 모습을 보며 고독한 표정을 짓는다.
그의 창조물은 완성되었지만, 그는 그 끝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그 무게를 홀로 감당해야 했다.
지로가 남긴 질문은 단순하다.
“창조의 아름다움은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오늘날에도 크나큰 울림을 준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창작이 대량 생산되는 시대에
우리는 지로처럼 자신의 결과물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예측 불가능성이 창조자를 면책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불확실함 속에서 책임의 윤리는 더 무겁게 다가온다.
미야자키는 지로를 통해 말한다.
완벽한 창조는 존재하지 않고, 완벽한 책임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창조자는 언제나 자신의 손끝에서 태어난 결과를 바라보며
그 결과가 만들어낼 세계를 두려움과 함께 받아들여야 한다.
지로의 삶은 바로 그 무게를 감당한 창조자의 초상이다.
'지브리 캐릭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지브리 캐릭터 카스트롭의 경고 — 이상과 현실의 균열에서 태어난 현대적 불안 (0) | 2025.11.15 |
|---|---|
| 지브리 캐릭터 나호코의 바람 — 병약함이 들려주는 사랑의 지속 가능성 (0) | 2025.11.14 |
|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 '모노노케히메'에서 '타타라 마을'의 불길 — 노동과 구원의 경계에서 (0) | 2025.11.14 |
| 지브리 캐릭터 에보시의 선택 — 인간 중심의 구원이 남긴 그림자 (0) | 2025.11.13 |
| 지브리 캐릭터 산의 분노, 인간의 오만 — 파괴의 시대가 잃은 윤리 (0) | 2025.11.13 |